어머니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셨습니다

하얀 천 위에 놓인 흰 국화 한 송이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배웅해 드리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일들이 일상으로 돌아온 뒤 하나둘 마음에 떠오릅니다.

그중에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장면들도 있습니다.

🌿 빈소 앞에서 마주한 두 개의 풍경

어머니의 빈소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동생의 직장 관계자들을 비롯해 많은 분이 찾아주셨고,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근조화환이 들어왔습니다. 빈소 밖까지 길게 늘어선 화환을 보며 어머니의 마지막 길에 마음을 보태주신 분들께 참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눈길이 머무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앞에 마련된 다른 분의 빈소였습니다.

그곳에는 화환이 두 개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빈소 앞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화환이 있었고, 그분의 빈소 앞에는 단 두 개가 있었습니다.

그 두 풍경을 바라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화환이 많다고 더 귀한 삶이었을까요.

조문객이 적다고 덜 사랑받은 사람이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 역시 누군가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화환의 숫자는 고인이 얼마나 사랑받았는가보다 남겨진 가족이 어떤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지를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화환에 담긴 정성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로 한 사람의 삶의 무게를 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환 두 개가 놓인 빈소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이별의 슬픔이 있을 테니까요.

한국의 장례를 치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았습니다.

고인에게 올리는 국화 한 송이에도 비용이 들고, 장례식장 사용료와 여러 장례용품, 조문객들에게 대접하는 음식까지 많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먼 길을 찾아와 함께 슬퍼해 주신 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은 한국 장례문화의 아름다운 정이기도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이 고인을 향한 마지막 예의이면서,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이별을 견디기 위해 마련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장례의 규모와 형식은 저마다 달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까지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 어머니의 마지막 길에서

어머니는 화장한 뒤 조용하고 정갈한 봉안시설에 모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화장을 마친 뒤 유골을 수습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 남아 있던 하얀 뼈들을 바라보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직원이 무언가를 골라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금속 막대와 나사들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척추 수술을 받으시면서 몸속에 넣었던 것들이었습니다.

Rod and screw

환자의 척추를 지지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금속 기구들.

병원 수술실에서는 수없이 보아 왔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제게는 더 이상 단순한 의료기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어머니의 척추를 지탱하며 어머니의 몸과 함께했던 물건들이었습니다.

그 작은 쇠붙이들이 어머니의 몸에서 나와 따로 놓이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마저 어머니는 가져가지 못하셨습니다.

평생 살아오며 아끼던 물건도, 수많은 사람과 맺었던 사회적 관계도.

심지어 자신의 몸속에 들어 있던 금속 막대와 나사까지도.

모두 이 땅에 두고 가셨습니다.

그 순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 디모데전서 6장 7절

수없이 읽고 들었던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만큼 그 말씀이 가슴 깊이 와닿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조금 더 가지려고, 조금 더 인정받으려고, 조금 더 잘살아 보려고 애씁니다.

그러는 동안 정작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야 할 말은 자꾸 뒤로 미루기도 합니다.

다음에 만나면 해야지.

시간이 나면 찾아뵈어야지.

다음에 전화하면 되겠지.

언제까지나 그다음이 있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돌아오면서 제 마음에 남은 것은 화환의 숫자도, 장례식의 규모도 아니었습니다.

올해 어머니의 구순을 함께 축하했던 시간.

곁에서 간병하며 손을 잡아드렸던 시간.

그리고 멀리 산다는 이유로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아쉬움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나서야, 어머니가 제게 얼마나 많은 것을 남기셨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 곁을 지켜준 사람들

어머니를 보내드리며 또 하나 깊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지켜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 일인지 말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중 맏이입니다.

하지만 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정작 어머니 곁에서 해야 할 많은 일들을 동생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생들은 오히려 멀리 있는 저를 염려하고 배려해 주었습니다.

저마다의 삶이 바쁘고 감당해야 할 일도 많았을 텐데, 맏이인 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어머니께 많은 돌봄의 손길이 필요했던 시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애써 준 하나뿐인 올케에게는 특별한 고마움이 남습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시간을 내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일상을 뒤로 미뤄야 하는 일입니다.

멀리서 걱정하는 마음과 가까이에서 직접 감당해야 하는 수고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모두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정성과 수고가 있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 고마움을 몇 마디 말로 다 전할 수 있을까요.

그 수고를 결코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려 합니다.

동생들과 올케, 그리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머니를 위해 마음을 보태고 함께해 준 모든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서도 서로를 염려하고 보살펴 준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아버지가 계십니다.

올해 아흔다섯이신 아버지.

세월 앞에 몸은 많이 연약해지셨지만, 정신만큼은 여전히 맑고 또렷하십니다.

그 연세에도 혼자 샤워를 하시고, 요양보호사님이 준비해 놓으신 음식도 손수 챙겨 드십니다.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셔서, 할 수 있는 일은 되도록 스스로 하려 하시는 아버지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립니다.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신 아버지의 마음은 또 어떠실까요.

오랜 세월을 함께한 사람의 빈자리를 자식들이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나니, 아버지가 아직 우리 곁에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더욱 깊이 느끼게 됩니다.

어머니께 더 잘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기에, 아직 우리 곁에 계신 아버지와의 시간은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싶습니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마음만 앞세우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 더 충실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다시 그리워할 오늘을, 또다시 당연하게 흘려보내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가족 모두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어머니를 사랑했고, 서로를 염려하며 함께 이 시간을 견뎌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떠나셨지만 어머니가 평생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랑은 이제 서로를 염려하는 동생들의 마음에, 올케의 따뜻한 수고에, 그리고 아버지를 함께 보살피려는 가족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어머니가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귀한 유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할 날들이 오래도록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 사랑해, 엄마

다시 익숙한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이면 여전히 출근 준비를 하고, 하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갑니다.

그런데 세상 어딘가에 늘 계실 것 같았던 어머니가 이제는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섭니다.

전화를 걸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고, 다음에 한국에 가면 또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은 했어도, 사랑한다는 말은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세월 속에서 우리를 품어주시고, 지켜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고마워요.

엄마가 남겨주신 사랑, 우리 형제자매들이 서로 아끼며 오래도록 간직할게요.

그리고 아직 우리 곁에 계신 아버지도 잘 모실게요.

이제 아프지 않은 곳에서, 근심도 눈물도 없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평안히 쉬세요.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살아 계실 때 더 많이 하지 못한 그 말을, 이제라도 마음을 다해 전합니다.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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